꽤 오랜시간 함께한 내 ‘자존심’과 헤어졌다. 최근 몇 달 사이 이래저래 말썽을 부렸다. 보험 출동 서비스를 두 번 불렀고, 지난 수요일엔 견인차 신세를 졌다. 더이상 자존심을 지킬 때가 아니었다. 새 차를 볼까, 중고차를 볼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오갔다. 마음에 드는 새 차를 뽑는데도 최소 3주가 걸린다 해서 주말 시간을 내서 중고차 매장을 가봤다. 자동차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평생 기름밥 드신 아버지 신세도 졌다. 아버지는 가보면 마음에 드는 건 무조건 있을거라고 호언장담했다. 무슨 소린가 했는데, 정말 그랬다. 왜 중고차 매장에 있지 싶은 차들이 즐비했다. 고민 끝에 사고 싶었던 차종 중에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버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신분증도 없고, 카드 없이 맨 몸이었지만, 그래도 계약은 됐다. 그리고 오늘 내 ‘자존심’을 데려다 주고, 새 친구를 받아왔다. 마지막으로 씻기고, 청소를 했다. 이별까지도 사랑이래서.
공교롭게, 또 다른 이별이 같은 시기에 찾아왔다. 오래 뉴스민에서 함께한 후배 기자가 좋은 기회에 한겨레 신문사로 옮겨갔다. 대학부터 뉴스민까지 따져보면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후배다. 대구경북 한겨레 경력기자 공채 소식을 듣고 좋은 기회다 싶어 한 번 지원해보라고 권했다. 지금껏 한번도 자소서를 써 본 적 없다는 후배는 자소서를 잘 못 쓰겠다며 조언을 구해왔다. 후배는 7년 가까운 시간 대구에서 나름의 관점으로 기사를 써왔다. 노동권과 인권이라는 필터를 통해 여과한 행정, 정치, 사건 기사를 썼다. 그 점을 강조해 보라고 했다. 조언을 반영했는지 알 수 없지만, 후배는 꽤 높은 경쟁을 뚫고 최후의 1인이 되었다. 금요일 저녁, 환송 퇴사식을 하며 밤새 술을 먹었다. 함께한 시간을 오랜만에 되돌아봤다. 식상하지만 애증의 시간이었단 표현만큼 적절한 것도 없는 것 같다. 미움도 사랑과 함께하듯, 시원하면서도 섭섭하고, 기쁘면서도 울적한 퇴사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