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관 기행] 170606 박경리기념관

박경리기념관에서 발이 묶였다. 점심시간이라 그런가 버스 텀이 이상하게 길다. 버스정류장에 걸터앉아 선생을 추모하는 글을 써보기로 했다. 선생이 영면에 들던 2008.5.9에 나는 한참 신병교육대서 훈련을 받고 있었고, 그 이후 1년여 만에 토지를 읽었다. 징역에서 토지를 읽었다는 유시민 작가가 약간 친근하게 느껴졌다. 토지는 태백산맥과 함께 천둥벌거숭이를 교화한 또 하나의 선생님이었다. 마음을 담아,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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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의 생가터를 들리고 기념관으로 가볼 요량이었다. 어제 미리 봐둔 표지판에는 충렬사 앞 삼거리에서 오른편 동네 골목길이 선생의 이름을 딴 산책로였다. 그 산책로 어딘가에 선생이 태어난 집이 있다. 아마도 소녀 시절 선생의 놀이터였을 굽은 골목길은 수십 년이 지나 그의 이름을 딴 산책로가 됐다. 담벼락 이곳저곳, 어쩌면 작가의 친구가 살았을 그 집, 이곳저곳에 생전 선생이 남긴 말과 글이 새겨졌다. 살아서 완결하지 못한 ‘나비’가 말, 글과 함께했다.

 

박경리

 

굽이친 골목 어딘가에 고동색 낡은 대문집에는 언젠가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다. 어쩌면 형제, 아니면 부자였을 권 아무개와 권 아무개에게 전해져야 할 고지서가 대문 앞에 나뒹굴었다. 박 아무개라는 사람도, 유 아무개라는 사람의 흔적도 보였다. 바로 얼마 전,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대통령 당선으로 끝난 선거 공보물도 유권자를 만나지 못했다. 고양이 한 마리만 남아 우두커니 대문 앞을 지켰다. 공보물을 받지 못한 권 아무개와 권 아무개 그리고 박 아무개와 유 아무개는 누굴 대통령으로 선택했을지 궁굼해졌다. 꽂아둔 그대로 남아있는 고지서 뭉치 위에 새로운 고지서를 꽂는 집배원도 궁금했다.

 

박경리

 

궁금증을 뒤로하고, 다시 선생이 태어난 집을 찾아가는 길은 복잡했다. 이렇다 할 표지는 보이지 않고, 길만 어지러이 엉켰다. 휴대폰으로 지도를 켜고, 붉게 반짝이는 점을 향해 발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 길에도 선생의 말과 글이 새겨졌다. “생각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또 배제합니다.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자주 마주 앉아 보세요. 모든 창작은 생각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생각, 창작, 창조를 이야기하는 말은 이젠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담벼락에 새겨졌다. 창작, 새로움과 탄생의 원리를 말하는 담벼락이 죽은 집이라 애달팠다. 말이 새겨지고 집이 죽은건지, 죽은 집 위에 말을 새긴건지 궁금해졌다.

 

박경리

박경리

 

죽은 집 뒤편에 선생이 태어난 집이 있었다. 이젠, 선생과 연고 없는 누군가가 사는 그 집은 공중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공개되지 않는 집 담벼락에 손바닥만 한 표지만이 이곳이 대가가 태어나 10여 년을 산 곳이라고 증명했다. 선생은 살아  생전에 이 대문 밖에 짐승들이 으르렁거린다고 했다. 늑대가, 여우가, 까치독사가, 하이에나가 있다고 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홀가분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선생은 늑대와, 여우가, 까치독사와 하이에나가 있다던 집에서 멀리 떨어진 땅에 잠들었다. 늑대와 여우가, 까치독사와 하이에나 대신 멀리 파란 항구마을이 보이는 땅이다.

 

박경리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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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여전히 오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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