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2’18
2014년 다른 블로그에 써놓았던 서평을 옮겨 둡니다.
블로그 타이틀을 ‘대구에서 독립언론 기자로 살아가기’로 정한 이유를 이 서평으로 대신합니다.
지금부터 이어질 글은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에 대한 서평이라기보다 책을 읽으며 정리한 내 이야기다.
지역언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졸업 후 진로를 언론계로 확정한 무렵이었다. 우연히 <은평시민신문>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정확하게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서울 은평구 주민들이 자기 동네 이야기, 옆집 이웃 이야기, 행정의 불편부당한 사연 등을 직접 취재하고 기사로 써 신문으로 제작․공유한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기사 내용은 분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기사를 읽으며 했던 생각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동네언론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민이 직접 신문 제작에 참여해서 자기 동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웃의 이야기를 기사로 써낼 수 있다면, 필연적으로 주민은 주도적이고 주체적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주민들이 신문 제작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된다면 서로의 어려움에 대한 ‘연대’는 자연스럽게 발현되지 않을까하고도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해고당한 노동자가 뉴스 속 ‘남’일 때와 ‘옆집 철수네 아빠’ 일 때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거라 생각했다.
막연했지만, 동네언론, 작은언론의 필요성을 자각했고 언젠가 내 고향 마을에서, 내 고향 땅에서 작은언론을 실현해보자는 목표도 세웠다. 언론 지형마저도 보수적인 대구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스민(2012년 5월 1일 창간된 대구지역 대안인터넷언론)>은 막연한 생각을 무작정 현실화시킨 것이었다. 대학 교지편집부 선배와 술자리에서 했던 이야기가 예기치 않게 현실화된 결과물이었다. 지금도 크게 정교해지진 않았지만, 당시에는 더욱 투박했던 생각으로 <뉴스민>을 시작했다.
대략 2년간 <뉴스민>의 기자로 생활했다. 막연했던 생각을 어떻게든 현실화시키기 위한 고민과 활동의 연속이었다. 지역에 밀착한 기사, 지역민의 삶을 담아내는 기사를 쓰고, 지역민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되돌아보면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부분은 있으나, 무엇 하나 ‘완벽하게’ 달성할 수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졌던 가장 큰 목표는 <뉴스민>을 중심으로 적어도 구(區)마다 제휴할 수 있는 동네언론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도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필요’를 느껴도 ‘방법’을 몰랐다. 아마추어였다. 내 한 몸 제대로 간수하는 것도 힘들었다. 매일매일 기사를 출고하는 일만으로도 벅찼다. 그럴수록 프로페셔널에 대한 갈증만 커졌다. 기존 언론에 대한 ‘대안’의 성격을 갖기 위해선 우선 기존 언론을 알아야 했다. 겉으로만 훑어보고, 모방하는 수준에서 그쳐서는 대안이 될 수 없었다. 회의감만 깊어갔다.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긴 했지만, <뉴스민>을 나와 못 마친 학교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회의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내가 목표했던 것을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 공부의 필요성,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간극을 어떻게든 메워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주절주절. 하소연이 길었다.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이하 기자로 살아남기)』를 읽은 이유가 공부의 필요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종이신문의 종말이 공공연히 회자되는 21세기에 종이신문이, 그것도 지역신문이 살아남기 위한, 아니 살아남는 것을 뛰어넘어 제대로된 언론의 역할을 하기 위한 고군분투기가 ‘기자로 살아남기’에 소개되어 있다.
‘아-’하고 바보 도 터지는 소리를 연발하며, 많은 부분 공감했다. 마음속에 담고 있던 회의감도 어느 정도 해소하게 됐다. 지역언론은 분명히 중요하며, 갈수록 그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고, 커져야 한다는 신념을 되새기게 됐다. 특히나 요즘처럼 서울 중심의 기성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시기에 제대로된 언론 역할을 하는 지역언론의 필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기성언론의 무력함은 갈수록 심해지지 나아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은 이미 오래전에 언론이기를 포기했고, 오랜 세월 보수언론과 경쟁하며 생존을 위협당한 진보언론도 보수언론을 닮아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공론장에서 어느 일방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가 개진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현대 사회에서 언론은 그 공론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핵심적인 기제다. 하지만 이제는 진보언론 마저도 ‘일정한’ 수준의 목소리만을 담아낼 뿐,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데는 인색하다.
기성언론은 점점 더 서울 중심으로, 특정한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획일화될 것이다. 그럴수록 서울이 아닌 지역 이야기를 하고, 특정한 정치세력이 아닌 지역민,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지역언론의 필요성은 증대될 수밖에 없고, 증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현실적 조건에서 지역언론의 필요성을 증대시키고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기자로 살아남기’에서 제시하는 ‘어떻게’의 핵심은 당연하게도 ‘지역밀착 공공저널리즘’이다.
급격한 신자유주의화는 인간을 더욱 고립시키고 소외시킬 것이다. 그럴수록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지역민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조명하고, 그들의 삶이 진정 중요함을 일깨워야 한다. 고립되지 않도록, 소외되지 않도록, 자신을 잃지 않도록 끝없이 일깨워야 한다.
강원도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원주투데이> 오원집 대표이사가 미국의 한 지역신문사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신문의 1면 머리기사가 동네 빵집 주인의 죽음이었다. 한국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기사였다. 오 대표가 물었다.
“이 기사가 1면 톱이 될 만큼 중요한 건가요?”
미국인 편집국장의 대답은 이랬다.
“이제 다시는 그분이 만든 빵을 먹을 수 없으니까요.” p110
이제 다시는 당신이 만든 빵을 맛 볼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의 죽음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빵집 주인’이 존재한다. 내 한 몸 누일 수 있는 이 집의 벽돌을 날라준 당신이기에 중요하며, 내 욕심 많은 위장을 채운 쌀 한 톨을 길러낸 당신이기에 감사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일은 지역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역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각론이다. 악마는 각론에 숨어있다. 점점 더 작아져야 한다. 각론에 숨어 있는 악마를 찾아야 한다. <뉴스민>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점은 작은 시, 군, 구, 면으로 갈수록 커지는 악마의 존재였다. 작아질수록 여론을 주도하는 마을 유지(권력자)의 힘은 크고, 자동적으로 오가작통제가 작동했다.
언론-관-유지(권력자)의 견고한 유착관계 속에서 지역민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절대로 지역이 변할 수 없는 구조는 유착관계가 깨지지 않는 이상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 중심에는 부패한 언론이 자리한다. 지역 없이 서울이 있을 수 없고, 대한민국도 있을 수 없다. 다시, 해답은 작은언론, 지역언론이다.
김주완 편집장님 시절에 이책을 읽고 페북으로 메세지 보내니 부끄럽다고 하신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