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언론사에 ‘단독’은 중요한 ‘후까시’다. ‘단독 버리기’를 누가 단독으로 했는지를 다툴 정도니까.
문득 궁금해졌다. ‘단독’이라는 거 이거 언제부터 사용된 걸까? 예전에 한 선배에겐 일본식 은어가 많이 남은 언론계에서 사회면 특종 기사를 ‘독고다이’라고 부르던게 ‘단독’의 시작이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긴 한데···. 사료를 좀 찾아봤다.
“우리 언론에 있어 가장 먼저 등장한 특종, 단독보도는 1946년 6월 3일 과거 통신사 중 하나였던 합동통신의 이승만 정읍연설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언론사적으로 보면 이 연설보도는 합동통신 소속 김성락 기자의 특종이었다고 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 주요 언론에서 이날 연설을 ‘전주발 합동’이라는 출처를 명시해 보도했고···(하략).” (김진중. 2015. 종합편성채널의 등장과 단독보도 유형과 특성 변화에 관한 연구)
지금처럼 ‘단독’ 후까시를 넣는 보도가 언제부터였는지는 확인이 안되는 거 같다. 다만 언론사적으로 봤을 때 1946년의 이 보도가 우리나라에선 의미 있는 단독보도의 등장으로 인정받는다는 정도만 확인된다. 이쯤 하면 ‘단독’ 보도라는 게 느자구없는 보도에 마구잡이로 쓰는 게 아니라는 건 정도는 분명하다. 언론사적 뿐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거나, 변화를 추동하는 보도에 붙여 주는 게 ‘예의’ 정도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론 얼마 전 꽤 흥행한 영화 ‘1987’의 시작을 보여주는 보도 정도가 ‘단독’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붙이지 않는게 무례한 게 아닐까 생각되는 보도가 아닐까 싶은데. 아이러니 한 건, 이 보도를 한 동아일보사가 만든 채널A가 그 유명한 ‘뼈 없는 치킨 주문’을 ‘단독 보도’ 한 곳이라는 것 정도일까. 27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요즘 일선기자들 사이에 ‘단독’이라는 후까시가 붙은 기사가 얼마나 가치가 없어졌는지는 두말하지 않아도 충분할 정도다. 독자들도 ‘단독’이 ‘내가 제일 먼저 베껴썼어요’라는 의미라는 것 정도는 다들 안다고 하지 않나. 앞서 인용한 논문을 보면 현직 방송기자들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단독 기사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이렇다.
“기본적으로 취재기자가 기사를 취재, 작성하며 달기도 하고, 데스크에게 발제, 보고하면서 단독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단독보도를 정하는데에는 경력과 연륜을 갖춘 취재기자들의 기자적 양심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중략) 특정 기준이나 법규를 따르는 것이 아닌 취재 기자의 양심, 그리고 부장이나 데스킹 차장 등의 데스크를 거치고 편집회의에서 걸러내기 과정을 통해서 방송사 자체적으로 단독보도가 과연 붙어도 되느냐라는 자율정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김진중. 2015.)
양심. 으로 결정한단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서울에선 거들떠 보지도 않는 지역에서 작은 인터넷 언론에 있는 나는 ‘양심’도 없는 기자들을 참 많이도 봤던 것 같다. 몇 달을 사안을 쫓으면서 기사를 쓰고 있다보면 어느날 갑자기 ‘서울’ 기자가 ‘단독’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취재원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은 왕왕 있어서 언급할 것도 없고, 그냥 말도 없이 서울에서 지역 당사자나 언론은 개무시하고 짝짜꿍 단독 기사 내는 일도 있어서 그게 ‘양심’으로 결정하는지는 진짜 꿈에도 몰랐다.
내가 있는 언론사는 2012년에 창간하면서부터 ‘단독’ 같은 거 쓸 생각을 안했다. 언론 환경이 이미 옛적에 바뀌어서 초 단위로 새 기사가 올라오는데, ‘단독’이라고 붙인들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했고, 사실, 그 무렵 우리가 쓰는 기사는 다른 언론사는 잘 관심 두지 않는 영역이어서 ‘단독’이라고 달기 시작하면 단독 아닌게 없고. 그렇다면 기준을 정해야 하는데, 기준이라는 것도 모호하니까(대형 언론도 양심으로 한다니까 뭐···). 자매사이자, 이 바닥 선배 언론사로 2005년 창간한 인터넷 대안 언론 <참세상>이 단독 안 달고 있던 것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다. 지금처럼 LTE가 상용화되던 시절도 아닐 때 온갖 노사분규 현장에 혈혈단신 노트북 하나 들고 고립된 현장에 들어가 기사를 쓰면서도 ‘단독’ 같은 거 안 달던 선배들이었다.
그 선배들도 그랬고, 우리도 그렇지만, ‘단독’ 그런거 우리는 애초에 안 썼고, 서울에서 쓴다고 하면 주면 그만이다. 우리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그게 취재원들에게 더 도움이 되는 일이면, 오히려 권하기도 한다. 우리한테만 정보 풀지 말고, 서울, 중앙 언론에도 같이 풀하시라고. 그런데 문제는 그때 뿐이라는 거다. 자극적이거나, ‘기사가 된다’ 싶은게 있으면 ‘단독’으로 쓰지만, 그리고 나서. 그 이후에도 계속되는 사건, 사안에 끝까지 붙는 서울 언론, 기성 언론, 메이저 언론은 잘 본적이 없다.
우리라고 ‘단독’ 쓰고 싶을 때가 없겠나. 2014년 대구시가 이 모 화가의 미술관을 지으려 할 때 그 화가와 대구시가 주고 받은 편지를 공개할 때도, 2016년 7월에 총리라는 사람이 교통사고 내놓고 그대로 줄행랑친 사건을 보도할 때도, 2017년 대구가톨릭대학교 병원 간호사들이 싸움을 준비하는 걸 지켜볼 때도, 스멀스멀 이 정돈 ‘단독’ 달아봐도 괜찮지 않겠나 유혹이 일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단독’이 이젠 후까시 잡는 것 이상 의미가 없는데다, 사건이 조속하게, 올바르고, 좋은 방향으로 종결되는데도 큰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JTBC가 대형 언론사 중에선 처음으로 단독을 버리기로 한 건 늦었지만 옳은 방향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역시, 기자들 개개인이 더 잘 알고 있을, 바로 그 일을 하는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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