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막지한 엄숙주의에 내가 빠져든 것이 아닌가. 스스로를 되돌아봤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웃을 수 없었다. 영화 ‘터널’ 이야기다. 한동안 영화를 보지 않은 탓에, 좋아하는 배우 셋이 한꺼번에 나온다는 영화가 있어서 간만에 극장을 찾았다. 얼마전 JTBC 뉴스룸에 출연한 하정우 인터뷰를 본 것도 한 몫 했다. 재난영화랬고, 세월호가 언급됐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했지만, 나는 안일했다.
부실하게 만들어진 터널은 삼풍과 성수를 기억하게 하고- 하염 없이 깊은 붕괴현장, 파고-파고-파고 내려가야 하는 현장, 그리고 의인의 죽음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했다. 새까맣게 어두운 현장에서 하정우가 내뱉는 한마디, 한미다가 역설적으로 스크린 밖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아이러니에서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개새끼가, 유일한 내 양식을 먹어치워 버린 상황에서 하정우가 쏟아내는 욕설, 그리고 그 욕설이 자아내는 웃음의 바다에서 나는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다.
영화는- 그러니까, 영화였고, 반전이 없었다. 반전 없음은 –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본 경험으로 말미암았다. 영화는, 영화였기 때문에 하정우는 살아왔고, 개새끼도 살아왔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결말났다. 그러니까- 나는 현실에서 똑같이 지켜봤던 잔상으로 영화의 뒷이야기를 예상할 수 있었지만, 예상은 결말에서 영화로 돌아왔다.
“다 꺼져, 개새끼들아!”를 들었을 땐, 어쩌면 내게 하는 소리는 아닐까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니까, 스크린 속 하정우를 지켜본 나와 터널 속 하정우를 지켜본 수많은 카메라와 사람들을 사이에서 무방비로 “다 꺼져, 개새끼들아!”를 들어야 했다. 극장 불이 켜지자마자 몸을 일으킨 건 늦은 시간 때문도 아니고- 그러니까 분명히 “다 꺼져 개새끼들아!” 때문이었다.
힘들다. 재난영화도, 범죄영화도, 볼 여유가 없다. 이미 나는 스토리를 다 알고 있지만, 영화는 영화로- 남아 있을 거기 때문이다. 헤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가 나는 두렵고,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