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에 대한 사견(‘16.06.22)

신공항에 대한 사견
_지방분권과 지역 언론

16년 6월 21일, 정부는 결국 신공항 백지화를 공식화했다. MB에 이어 두 번째. 다음날 지역 일간지는 모든 화력을 집중해서 정부가 ‘지방을 버렸다’고 ‘흥분’했다. 매일신문은 백지 1면을 내며 지역 언론 맏형의 역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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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의 분노

2가지 이유로 나는 신공항 다루기를 포기했다. 첫 번째 이유는 신공항의 필요 여부를 내가 도저히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MB가 불을 지피면서 본격적으로 이 논리, 저 논리로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펼쳐졌는데, 무엇 하나 신뢰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전문가도 아니고, 자신 있게 신공항이 ‘필요하다!’ 또는 ‘필요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에게 자문이라도 구해야 할 텐데, 그것도 글렀구나 싶었다. 전문기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내놓는 주장, 근거도 신뢰할 수 없었다. 밀양이 최적지라는 대구 언론도, 가덕도가 최적지라는 부산 언론도, 전문가에게 기대고 있었다. 최초에 노무현 정부가 남부권 신공항을 입에 올리고, MB 정부를 거치면서 본격화된 신공항은 이미 정치적 아젠다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누구 주장이 옳다고 판단하는 일 자체가 넌센스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공방’을 보도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거의 매일 3~4면을 털어서 ‘올빵’하는 지역일간지가 있는데 굳이 ‘공방’을 다룰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신공항 다루길 포기했다. 차라리 다른데 내 노력을 더 하는 게 낫겠구나 판단했다.

두 번째 이유는 불편함이다. 대구도, 부산도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신공항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그 언설이 불편했다. 신공항 건설이 어떻게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과 연결될 수 있는 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서울로 집중된 권력이 공항 하나로 분권이 되고 균형이 맞춰질 리 없다. 더구나 이미 오래전에 전국은 1일 생활권에 들었다. 공항이 있다 한들, 밀양(가덕도)으로 들어온 사람과 물자는 물리적으로만 봐도 3시간이면 서울로 빨려 들어갈 수 있다. 관광 온 사람도 머무를 이유를 찾지 못하면, 밀양으로 들어와 서울로 떠날 테고, 물류도 이내 서울로 올라갈 거다(수요가 거기에 있으니까). 기업이 따라 내려올 거라고? 그렇게 내려가라고, 내려가라고 ㅈㄹ을 해도 안 가는 기업이 공항 하나 때문에 내려간다? 망상은 그쯤 해두는 게 정신 건강에도 이롭다.

“현재 비수도권 농어산촌에서 벌어지는 지역 개발은 대부분 외부 자본이 들어와 지역의 역사, 문화, 환경, 전통 등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방식으로 개발하는 외래형 개발에 입각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래형 개발 방식은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 외부의 자본은 지역 환경 보전에 소홀하고, 지역에서 이익을 올려도 지역에 재투자하지 않으므로 개발로 지역을 활성화시킬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하승수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p174-175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을 알리바이로 신공항을 외치는 사람들의 논리는 토건개발로 농어산촌을 약탈해 ‘연명’하자는 주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벌써 부동산 투기꾼들이 ‘엿’먹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판국이고, 토건은 결국 대형건설사 몇 개가 나눠 해 처먹고, 지역 건설사(장)이 찌꺼기 건져 먹는 수준이라는 건 이미 여러 토건개발로 경험한 바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 간 불균형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중앙 집중과 도시화다. 그중 유독 서울 집중이 심각한 건 맞지만, 지역도 지역마다 집중과 도시화 현상이 발생한다. 이걸 단순히 수도권-비수도권 문제로만 환원해서 서울이 지방을 죽인다느니, 버렸다느니 하는 주장은 또 다른 지역 갈등을 촉발할 뿐이다. 서울이 지방을 죽인다고 우는소리 하는 대구가 결국 주변 다른 농어산촌 소도시를 죽여서 연명하는 꼴이 지방분권은 아니다.

그래서 방법이냐 뭐냐!?고 물으면 솔직히 나도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몇 달째 손에 들고 있는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를 보면 한 가지 대안은 있다.

“내발적 발전이란 ⋯ 지역주민이 능동적 주체가 되어 지역에 있는 자원, 기술, 인재, 문화, 시장 등 여러 가지 자원을 활용하여 복합적인 경제를 육성하고, 그것들의 네트워크를 이룩함으로써 환경 보전과 함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종합적인 지역 발전 ⋯ 내발적 발전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보면, 외부 자본을 유치하고 외부의 지원을 따 내더라도, 그것은 지역의 역량과 계획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외부 계획에 따라가는 것은 실패의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역 주민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개발이 되기는 어렵다. 또한 중앙정부의 계획과 지원에 의존하는 것은 결국 획일적인 개발이 되어 지역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하승수,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p197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저들을 견인하고, 끌고 가야 된다 하늘 향해 입 벌리고 있는 아기 새처럼 짹짹거려봤자, 매번 끌려다니기만 할 뿐, 분권은 개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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