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포차]“안녕하세요, 대구에서 가장 달콤한 음악을 하는 4-tential입니다”

문화의 척토 대구… 인디 음악 풍토 넓히는 허재영 씨를 만나다

철이 없데 난 철이 없데 / 철이 없데 난 철이 없데

그래 난 철이 없어 / 주말에 집에 가는 애들이 부러워 / 난 그러지 못해 / 두려워 / 동료들이 쫓겨나지는 않나 / 취객들이 시비를 걸지는 않나 / 그래 뭐 나의 괜한 걱정일 거야

열두시 점오시간이 되서야 도착해 / 뛰었더니 피곤해 / 씻지도 못한 채 깊게 잠이 들곤해

금요일 밤, 대학 술자리 / 끝까지 남지 못해 / 들던 막잔이 내 눈에 보여 / 그리고 기숙사로 혼자 걷는 / 나 자신이 좀 외로워 보여

나도 역시 엄마의 된장국이 생각나 / 일요일 점심, 아무도 없는 학교식당에서 / 혼자 밥을 먹을 땐 / 혼자 밥을 먹을 땐

너는 몰라 내가 원하는 것과 / 원치 않는 것 / 내가 꿈꾸는 것과 계속 그려내는 것 / 음악을 통해 풀어내는 것과 / 내가 음악으로 매 시간 남고 싶단 걸

철이 없데 난 철이 없데 / 철이 없데 난 철이 없데
/ 4-tential(허재영) <철이없데 중>

“저를 규정짓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공부를 시작했던 이유가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궁금해서 였던 것처럼 저는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궁금해요. 그래서 무엇 하나에 저를 묶어놓고 싶지 않아요”

참, ‘철이 없는’ 말이었다. 인터뷰이의 특징을 부각해서 기사를 써야하는 기자에게 그는 자신을 하나로 규정지어 설명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난감하다. 어떤 말로 그를 소개해야 좋을까. 그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그저 ‘음악을 하는 젊은 대학생’일 뿐이다. 허재영(21), 마이크를 잡을 때 그는 자신을 ‘4-tential(포텐셜)’이라 소개한다.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무한히 상상하고 있는 그를 봉산문화거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공연 중인 허재영 씨 [출처;허재영 미니홈피]
▲ 공연 중인 허재영 씨 [출처;허재영 미니홈피]
“안녕하세요, 대구에서 가장 달콤한 음악을 하는 4-tential입니다”
허재영이 달콤한 래퍼 4-tential이 되기까지

올해 21살, 평상시에 그는 대구대학교 금융보험학과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하지만 밥을 굶어가며 모은 돈으로 산 6kg짜리 앰프를 어깨에 메고 거리에 서는 순간 그는 ‘달콤한 음악’을 하는 래퍼가 된다. 지금까지 직접 만든 곡만 해도 50여곡에 이른다.

그가 본격적으로 랩을 접하게 된 건 수능을 친 후 대학 입학까지 남은 공백기 동안이었다. 고등학교를 경기도에서 졸업한 그는 지난해 1월 2일 처음으로 경기도 구리에서 있었던 프리스타일 랩 싸이퍼(Cypher. 비보이, 힙합, 팝핀 등의 장르에서 참석자들이 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서로의 실력을 선보이는 자리)에 참석했다. 학창시절 그는 평소에도 랩을 자주 들었고, 장기자랑 시간이면 친구들 앞에서 랩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지 좋아하는 음악이었을 뿐, 지금처럼 죽고 못 사는 ‘꿈’은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까지 랩을 좋아하게 된 건 처음 참석한 싸이퍼 덕분이었다. 처음 참석한 싸이퍼는 그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힙합, 랩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으레 거칠고 딱딱한 분위기 일거라 생각했지만 처음 참석한 그를 기존의 멤버들은 반갑게 맞아주었고,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정이 느껴졌어요. 금방 형, 동생이 되었고,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인정해주는 분위기 였어요. 솔직히 프리스타일 랩이면 그 자리에서 즉석해서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가사를 좀 적어 갔었거든요. 다 알면서도 예쁘게 봐주고 챙겨줬었죠” 좋아하는 음악을,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할 수 있어 그는 행복했다.

주춤했던 대구 프리스타일 랩에 온기를 불어넣고…
방구석 MC(Microphone Controller, 래퍼)들에게도 기회를

싸이퍼에 매료된 그는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싸이퍼에 한번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2월 중순 무렵 입학이 예정된 대학에 가기 위해 대구로 내려오기 전까지 그는 싸이퍼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보니 대구에 내려가서도 싸이퍼를 지속하고 싶었다. 전국의 래퍼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클럽 <프리스타일 타운>에서 대구 싸이퍼에 대해 알아보았다. 클럽 게시판에는 2008년 이후로 싸이퍼 소식이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대구서도 하고 싶었는데 2008년부터 글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럼 내가 내려가서 다시 시작해야겠구나 생각했죠. 경기도에서 같이 싸이퍼 했던 친구가 글도 올려줬었구요. 허재영이가 내려가서 대구 싸이퍼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까 많이 관심 가져달라. 그런 내용이었죠. 나중에 안거지만 클럽에 글만 올라오지 않은거였지, 대구에서도 싸이퍼는 계속 열리고 있었어요”

당시 대구에서는 2006년부터 활발하게 싸이퍼를 열어왔던 주축 멤버들이 2008년 군입대를 해버리는 바람에 주춤해 있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에서 자신이 느꼈던 따뜻한 분위기가 그리웠던 재영 씨는 대구에 내려오는 대로 싸이퍼를 열어 볼 계획을 가졌다. 하지만 혼자서 하고 싶다고 해서 싸이퍼를 열 수 있는건 아니었다. 원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야 했고,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했다. 예의 클럽에 공지를 올렸다. 싸이퍼를 함께 할 사람, 장비를 빌려줄 사람을 섭외했다.

“공지를 해놓으니까 연락이 왔었어요. 그런데 그분이 전국적으로 랩 배틀로 유명한 분 인거예요. 저도 동영상으로 많이 봤었는데, 그분이 본인이 가지고 있는 앰프를 가지고 참가해주셨어요. 그렇게 처음 싸이퍼를 열게 됐죠”

국채보상운동공원에서 열린 첫 번째 싸이퍼에는 그를 포함해 다섯 명이 참석했다. “원도 못 만들죠. 다섯 명인데, 벤치에 앉아서 했어요. 앰프 가지고 온 그분이랑 둘이서 다섯 시간 동안 랩을 했었어요. 너무 행복했었거든요. 다시 할 수 있다는 게”

다섯 명에서 시작한 싸이퍼는 이제 최대 30명까지 함께 나와서 즐기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기 시작하자 그는 대구만의 프리스타일 랩 진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핫 스트리트>는 그런 필요에 따라 그가 개설한 인터넷 클럽이다. 재영 씨는 <핫 스트리트>를 통해 대구 지역의 래퍼, 프리스타일 랩을 좋아하는 이들을 모아내고 싸이퍼를 지속시켰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처음으로 공연도 준비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는 대구지역 래퍼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실력을 인정받은 래퍼들은 어디에서든 공연을 할 수 있었지만 그게 아닌 래퍼들은 음악을 좋아해도 그것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가 없어보였다.

“그래서 <래퍼레이드>라고 연속 공연을 준비하게 됐어요. 일명 ‘방구석 MC’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2월부터 매 짝수 달 대구 시내에서 공연을 열었어요” 그렇게 시작된 <래퍼레이드>는 오는 9일 세 번째 공연을 맞이한다. 9일에 열리는 <래퍼레이드>는 재영 씨에게 입대 전 마지막 무대가 된다. 재영 씨는 7월 2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한다.

허재영02
마침표를 허락지 않을 4-tential

“싸이퍼가 좋은 게, 마이크만 있으면 관객이든 래퍼든 같은 눈높이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어요. 잘하든 못하든, 싸이퍼 문화를 잘 알든 모르든, 페이(pay)랑, 돈이랑 상관없이 랩 하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나 즐길 수 있죠. 누구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재, 가슴에 담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랩을 하면 되는거죠. 매력적이잖아요” 재영 씨가 프리스타일 랩과 싸이퍼를 놓지 않고 이어가는 이유다. 이렇게 랩을 사랑하는 재영 씨는 앞으로 잠시 동안 좋아하는 싸이퍼와 헤어져 있어야 한다.

입대를 얼마 남기지 않고 있는 재영 씨는 지금 작은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입대 전에 완성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 그는 4-tential, 현재의 그에게 완성이란 단어는 허락되지 않는 단어다. “스스로 가능성을 국한 시키고 싶지 않아요”라는 그의 말이 기사를 마무리하려는 지금까지 계속 귓가를 맴도는 이유는, 아마도 이 글이 그를 어느 한 곳에 묶어두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불안감에서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에서 그에 관한 짧은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지만 언제고 다시 그의 이야기는 시작될 것이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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