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함께사는세상’의 연극배우 탁정아 씨를 만나다
고백하면 이번 인터뷰는 99% 사심으로 이뤄졌다. 소문으로만 접한 미모의 연극배우. 선배기자가 이번주 <민포차> 주인공으로 강력 추천하는데, 그다지 반대하지 않은 이유는 ‘미모’의 연극배우라는 점이 크게 작용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심은 100% 채워졌다. 그녀는 소문 그대로의 ‘미모’를 가지고 인터뷰 장소에 등장했다. 19일 극단 함께사는세상(함세상)의 배우 탁정아(사진) 씨와 사심 가득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노래와 연극을 놓지 않은 삶
“극단에 들어가는 것을 누구도 특별하게 생각지 않아”
함세상은 1990년 12월 창단되었다. 창단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곧 우리네 민중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선보여 왔다. 90년대에는 주로 노동조합을 찾아다니며 노동극을 주로 공연했고, 요즘에는 소극장 무대와 거리극을 주로 선보인다.
공연하는 장소가 바뀌고, 극단을 구성하는 사람이 바뀌어도 해직교사와 용산참사 피해자,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여성 등 삶에서 주인공일 수 없었던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건 변함이 없다.
탁정아 씨는 2005년 함세상에 입단했다. 그보다 1년 앞서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학생시절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과 노래극단 ‘좋은날’을 만들었다.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전국적으로 촛불의 물결이 일 때, 그녀는 대구 촛불의 중심에서 마이크를 들었다. 1년을 정신없이 보낸 좋은날은 이듬해 내부 논의를 통해 발전적 해체를 결정한다. 해체 후 그녀의 선택은 당연하게 함세상으로 이어졌다.
“대학 들어오면서부터 노래와 연극을 하고 싶었고, 대학 6년 동안 줄곧 노래와 연극, 문화운동을 했어요. 극단에 들어가는 것을 누구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왜’라는 물음이 무색하게 그녀의 삶에서 노래와 연극은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그녀는 노래, 연극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단대 노래패 활동을 했다. 경북대학교 인문대 노래패 ‘햇볕한줌’이 그녀가 3년 동안 몸담았던 노래패였다. ‘햇볕한줌’은 노래와 연주를 주로 하는 밴드와는 다르게 극을 짜서 공연을 하기도 하는 전방위 문예패였다.
패짱(노래패 대표)으로 3년 노래패 활동을 마치고도 문화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2001년부터 인문대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도 맡은 보직은 문화국장이었다. “기존 대학의 문화와 축제를 바꾸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는 그녀는 2003년 총학생회에서도 문화국장으로 일했다. 그런 그녀이기에 졸업 이후 노래극단 결성과 함세상 입단으로 이어지는 삶의 궤적은 정말 ‘당연한일’ 일수밖에 없었다.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연기
“좋은 연극은 배우 혼자가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만드는 것”
연극배우로서 8년째를 맞고 있는 그녀는 지금까지 <엄마의 노래>, <지키는 사람들>, <꼬리뽑힌 호랭이>, <아줌마 정혜선>, <나무꾼과 선녀>, <밥심>, <지하철 액맥이>, <우리집에 왜 왔니?>, <평화 이야기>, <밥 이야기>, <찔레꽃피면> 등 다수의 마당극과 거리극에 출연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거리와 무대에 서는 동안 좋았던 기억도 많고, 가끔씩은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전적으로 제 문제에요. 예를 들면 지난 6월 항쟁, 615 기념 문화제 공연할 때, 20분도 안되는 공연을 하는데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만 느껴지던지…” 지난 6월 10일 대구 228공원에서 열렸던 610민주항쟁 25주년, 615공동선언 12주년 기념 문화제 ‘6월의 노래’에서 그녀는 <퀴즈쇼>라는 작품을 공연했다.
“공연을 마치고 그날 박수소리를 들으면 오늘 공연이 먹혔는지 안 먹혔는지 감이 와요. 그날은 저도 기분이 그랬고, 관객들 반응도 신통치 않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기획을 맡았던 친구가 와서는 한 교수님이 너무 좋다면서 자기 수업에서도 한번 보이고 싶다고 했다더라구요. 그런 걸 보면 연극이 너무 좋아요. 결국 좋은 연극은 배우 혼자가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만드는거 거든요. 배우 혼자 아무리 잘해도 관객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만이고, 배우는 만족 못 해도 관객들이 감동 받았으면 또 그만큼 의미는 있는 거고… 제일 좋은 건 관객이 느끼는 감정과 내 감정이 일치될 때죠. 그때는 배우들도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관객들이 그녀를 감동시키는 일은 수시로 생겼다. <꼬리 뽑힌 호랭이>를 공연할 때 그녀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하는 오누이의 역할을 맡았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에 덜덜 떨고 있는데, 앞에 앉아있던 아이가 손을 싹, 잡아줘요”
<나무꾼과 선녀>를 공연할 때는 너무 진지하게 개다리 춤을 추는 아이들 때문에 순간 배역을 잊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극에 관객들을 참여시키는 거죠. 선녀가 ‘이렇게 슬프게 끝나기 싫다. 극을 바꿔보자’고 하면서 관객들과 극을 바꿔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극을 바꾸다가 마지막에 옥황상제를 설득하려고 아이들이 개다리춤을 추기로 했었는데, 얼마나 진지하게 춤을 추는지…”
그녀는 그것이 마당극에 모태를 두고 있는 함세상의 특수성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마당극의 원류는 탈춤이거든요. 민중들 스스로가 해학과 풍자를 표현할 수 있도록 했던 탈춤, 마당극의 형식과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이론 등이 접목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극이 표현 되는거죠”
현대 연극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러시아의 연출가 스타니슬라브스키는 배우의 사실적인 연기를 통해 관객들이 극을 실제처럼 느끼게 만들어서 관객과 배우의 경계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연극 해온 것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
“연극 그만두면 땅 파먹고 살고파”
이런 경험들 덕분인지 그녀는 “문화운동을 해온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며 “앞으로도 연기를 그만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 연극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요즘 오히려 연기의 ‘질’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 눈이 얼마나 높은데요. 자기가 노래를 못 불러도 무대에 선 사람이 노래 못 부르는 건 단번에 알아채고, 자기가 판소리를 할 줄 몰라도 못하는건 알아채요. 춤도 그렇고… 이제는 단지 좋은 내용을 가지고 있는 걸로 해결되진 않아요”
더불어 그녀는 요즘 오래전 그만두었던 노래에 다시 욕심을 내고 있다. 노래패 결성과 좋아했던 민중가요를 활용한 연극도 구상하고 있다. “민중가요가 투쟁가 말고도 서정적인 노래도 많고 좋잖아요. 이걸 활용할 수 있는 뮤지컬 같은 것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요즘 생각하는 건 8, 90년대 학생운동에 대한 연극을 만드는거예요. 그럼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요즘 영화에서도 당시 데모 장면이 많이 나오더라구요.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역사잖아요”
여전히 꿈 많은 그녀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연극을 그만두는 날이 오면 “시골에서 땅 파먹고 살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가 집 옥상에서 20년째 도시농업(?)을 하고 있다고… “내가 먹을 건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그녀는 “앞으로도 연극을 한 것을 후회할 일은 없을거고, 다만 얼마나 더 자유롭게 예술운동을 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며 웃어보였다.
이상원, 천용길 기자 solee412@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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