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반딧불이의 일꾼, 이가영 씨를 만나다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반딧불이(반딧불이)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는 대구 지역 청소년 단체다. 9년전 대안 교육을 표방하던 지역 공부방에서 본격적인 사회단체로 탈바꿈 했다. 주로 여름, 겨울 캠프나 518역사소풍, 인권캠프 등의 체험활동과 학교와 연계한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서 청소년을 직접 만난다.
오는 7월 21일에는 방학을 맞아 지쳐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힐링 캠프, <청소년 힐링 텐트촌, 좋지아니한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가영 씨는 “아이들이 이렇게 목숨을 버리기 시작하니까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추모집회를 하기도 했지만, 그런건 많이 하기도 했고… 저희만이 할 수 있는 걸 고민하다가 텐트촌 이야기까지 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도 처음에는 반딧불이를 통해 힐링을 받은 18살 청소년 이었다. 이제는 어엿한 반딧불이 일꾼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그녀는 “제가 반딧불이에서 받았던 것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일꾼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라며 웃어보였다. 민포차 아홉 번째 주인공은 반딧불이 막내 일꾼 이가영(사진) 씨다.
탈학교 청소년, 반딧불이를 만나다
“반딧불이는 저한테 학교이자 집이었어요”
그녀는 탈학교 청소년이었다. 그녀도 여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자고등학교 특유의 문화에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여자 고등학교 특유의 관계가 있어요. 몇몇 친한 친구들끼리만 어울리고, 다른 무리에는 배타적인 그런거” 1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새롭게 시작된 새 학기, 사건이 터졌다.
“사건이라면 사건인데, 학교 폭력까지는 아니였는데 오해가 생겼죠. 그전부터 받아온 스트레스도 있었고… 그날 신발주머니만 들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엄마한테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죠. 엄마는 학교를 그만두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학교를 나온 후 그녀는 전부터 하고 싶었던 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했다. 그해 6월, 6월 항쟁 행사에 봉사활동을 나갔다가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 모임(정시모)’와 인연을 맺었다. “그때부터 학교 다니면서 간간히 할머니들 만나러 가다가, 학교를 그만두고는 자주 가게 됐죠.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서 하는 ‘피스로드’에도 참여하기도 하구요”
<나눔의 집>은 1992년 만들어져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다. ‘피스로드’는 각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과 생활하며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공부와 탐방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정시모와의 만남은 그녀가 봉사활동이 그저 남을 돕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했다. “봉사활동이라고 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까 할머니들과 관계를 맺고, 그분들에 대한 의식을 가지는 거였어요. 애초에 생각했던 ‘봉사’라고 할 수는 없더라구요. 반딧불이 활동하면서 되돌아보니까 위안부 할머니들 문제는 여성인권 문제와 관계가 있었어요”
반딧불이와의 만남도 정시모에서 비롯되었다. 정시모에서 알게된 지인이 반딧불이 일꾼을 소개시켜주었다. “2008년 4월쯤에 반딧불이를 알게 됐어요. 좋았던게 학교를 나오고 나서는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반딧불이에는 또래 친구들이 있었죠. 그래서 ‘훅’ 빨려 들어갔던거 같아요” 그해 전국을 뒤덮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은 대구에서도 어김없이 밝혀졌고, 그녀는 반딧불이와 함께 집회현장을 누볐다. “발언도 많이 했었어요. 완전 신났었죠”
그녀에게 반딧불이는 학교이자 집이었다. 지금은 동료가 된 선생님들과 거의 매일 함께 하며 밥도 같이 해먹고, 영화도 보고, 캠프도 다니면서 반딧불이와 관계를 맺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갈 곳을 잃은 그녀에게 반딧불이는 말 그대로 작은 불빛을 밝혀준 곳이었다. “반딧불이에 완전 빠져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에 “그러게요, 여기 사람들 정말 헤어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라며 그녀는 정말 환하게 웃어보였다.
경험하고, 성장하고…
“반딧불이는 청소년이 스스로 나설 수 있는 저변을 만들어 주는 곳”
지난해 9월부터는 장애인 활동보조일도 하고 있다.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사람센터)의 활동가인 하형석 씨의 활동보조인이다. 그녀는 지난 4월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가 대구시의회 점거투쟁을 할 때도 함께 있었다. 활동보조를 하면서 ‘활동’을 하게 된 거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장애인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장애인 단체가 투쟁하는 걸 보면서 배우는 게 많아요. 마음이 피곤하긴 해요. 아무것도 모르다가 청소년 인권 문제를 알게 되고, 장애인 인권까지 영역이 확장되어버리니까요. 몰랐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했던 행동이나 말들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해요. 아, 이건 비인권적인데 그러면서, 공부를 해야하는거죠”
그녀는 이렇게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여러 면에서 부족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살이 되어 반딧불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겪었던 경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소위 ‘노는’ 학생이라는 고등학생들과 자존감 향상 캠프를 진행하면서 겪은 일이었다.
“정말 말을 안들었어요. 제가 여자기도 하고, 별로 나이도 안 많으니까. 말을 들을 리가 없었어요. 정말 미웠죠. 그런데 그날 밤에 소시오 드라마 방식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자기 이야기를 하고 북을 두드리는 형식이었죠. 그때 자기집 이야기를 하는데… 대부분 문제가 있다는 얘들은 가정에 문제가 있었어요. 가정이 재정적으로 힘들다거나, 편부모거나, 부모님간 사이가 좋지 않거나… 그날 많이 울었어요. 미워하는 마음을 먹은게 너무 미안하더라구요”
경험을 통해서 그녀는 스스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간의 경험으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 자살 문제도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 “문제는, ‘문제’를 드러내는 소위 문제아들이 아닌거 같아요. 캠프를 해보면 마지막에 미안함이 남는 아이들은 조용한 아이들이거든요. 반항하고, 말썽 피우는 아이들한테는 그만큼 관심을 쏟게 되지만 조용히 있는 아이들에게는 소홀해지니까요.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들도 그런 아이들이 아닐까 해요. 주변에 이야기를 하지 못할 만큼 조용한 아이들, 차라리 문제를 일으키는 방법도 모른채 억눌려 있는 아이들…”
그녀는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 때 주변에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 한명만 있었어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며 아쉬워 했다. “반딧불이는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관계를 만들어주고,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 해요. 다른 청소년 인권 단체처럼 제도를 바꾸는 운동도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청소년들의 문제는 그들 스스로 풀어낼 수 있도록 해줘야 할테니까요. 아이들이 나설 수 있는 저변을 우리가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대안교육의 또 다른 대안을 꿈꾸며,
“지금은 직업란에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선배들처럼 되고 싶어요. 선배들 각자는 떠올리면 ‘그 사람다움’이란게 있거든요”라는 그녀는 “지금은 저에 대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직업란에 뭘 써야 할지도 모르겠구요”라며 수줍게 웃었다. “아직은 어리잖아요. 저도 스스로한테 관심이 많지만 아직은 잘모르겠어요. 뭘 하고 있을지, 뭘 해야 될지”
그렇지만 그녀는 대안교육에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해보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교육환경이 모든 학생에게 맞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대안학교도 생긴거구요. 하지만 그 대안학교도 문제는 있잖아요. 또 다른 대안, 그래서 교육의 다양성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아, 어쩌면 몇 년쯤 후엔 프랑스에 있는 그녀를 만날지도 모른다. “몽마르트 언덕에서 맥주를 꼭 마셔보고 싶어요!” 라는 그녀는… 스물 둘, 꿈 많은 청춘이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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