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포차]“회사 ‘접수’보다 만드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이경선 아이쿱 대구행복생협 이사장을 만나다

지난 5일부터 대구 시의회에서는 제209회 임시회가 열렸다. 20일까지 16일 동안의 이번 회기에 친환경 의무급식 조례안의 통과 여부가 걸려있다. 대구에서는 3만여명이 넘는 시민들의 자발적 서명으로 주민발의된 조례안이 시의회에 상정되어 있다. 여기에는 내 아이가 학교에서 조금 더 안전한 음식을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어머니들의 바람이 들어있다.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머니들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이경선(사진) 아이쿱 대구행복생협 이사장이 생협 활동을 하게 된 계기도 순전히 아토피를 앓고 있는 딸아이 때문이었다. 서른넷 늦은 나이에 낳은 딸아이는 100일이 되던 때부터 아토피 증상을 보였다. 조합원이 어떤 종류가 있는지도 모른 채 당시 달서행복생협에 3만원의 출자금을 내고 조합원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조합비 조합원(매달 조합비를 내는 조합원) 2,755명, 일반 조합원(출자금만 낸 조합원)까지 합치면 3,200여명에 가까운 조합원이 있는 생협 이사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현재 대구에는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아이쿱 대구행복생협 외에도, 아이쿱 대구생협, 아이쿱 대구참누리생협 등 3개 생협이 있다. 세 곳의 조합원을 모두 합치면 약 1만명, 대부분 주부들이 조합원인 것을 고려하면 대구의 약 1% 세대가 조합원 가족이다. 생협 세 곳은 각 아이쿱 매장 두 곳씩을 운영, 관리하고 있다.

음악인으로 삶을 꿈꾸다

▲2012년 9월 만난 이경선 아이쿱 대구행복생협 이사장. (사진=뉴스민)
▲2012년 9월 만난 이경선 아이쿱 대구행복생협 이사장. (사진=뉴스민)

애초에 그는 음악을 하는 예술가의 길을 꿈꿨었다. 대학 시절 시작한 노래패 ‘우리노래반’의 인연으로 그는 졸업 이후에도 쭉 음악활동을 이어왔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니며 노래패 활동을 한 그는 그 시절 대부분이 그랬듯 대학졸업 후에도 노래 활동을 이어가고 싶었다. 같은 뜻을 가진 선, 후배들이 모여 모토(Motto)라는 팀을 결성했다. 팀에서는 베이스 기타를 맡았다. “노래를 잘하지 못해서 노래는 안했구요. 음악성이 없어도 쉬운 베이스를 맡게 되었죠(웃음)”

그 시절의 노래패들이 그랬듯 그의 팀도 노동현장에서 공연하는 일이 잦았다. 현장에서 공연도 하고, 개별 콘서트도 하며 음악 활동을 하다 2년 만에 팀을 해체했다.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민중음악을 하며 먹고 사는 일은 고민스러운 일이었고,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음악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를 했다.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아는 언니를 “잡고 놓아주지 않은” 채 음악이론과 재즈이론을 배웠다.

그렇게 몇 년을 이곳저곳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대구동부여성문화회관에서 운영하는 대구여성오케스트라에 협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그동안 배워온 음악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됐다. “지금까지 배워온 음악이란게 테크닉 위주란 걸 알게 된 거에요. 음악에 대해서 나름의 예술적 고픔이나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 테크닉만 배운거였죠. 때려치웠어요” 하지만 여전히 예술로서 음악에 대한 욕심은 남아있다.

딸아이 들쳐업고 찾아간, 생협마을모임
새로운 만남, 새로운 경험의 시작

딸아이를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그는 마을의 일반적인 주부들과는 대화 코드가 잘 맞지 않았다. 아이들 학원 문제, 제테크 문제를 이야기하는 그들 사이에서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하며 환경과 먹을거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가 쉬이 받아들여지긴 어려웠다. “제가 좀 밥맛이에요(웃음).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극성일 수 있죠. 먹을 것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섰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까. 딸아이가 아토피가 있기도 해서 관심이 많았으니까요”

관심사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눌 사람도 찾지 못하고 있던 찰라 생협에서 마을모임에 나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협은 조합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주인의식을 키워주기 위해서 상시적인 마을모임을 이어오고 있었다. 생협은 주로 사는 곳, 마을, 자치구를 중심으로 조합원을 조직하고, 모임을 만든다. 대구행복생협은 경산, 수성구, 남구와 달서구 일부 지역, 달서군 일부 지역에서 주로 조합원을 조직한다. 다른 지역이라고 해서 조합원으로 받지 않는 건 아니지만, 대구에는 행복생협 외에도 아이쿱 대구생협, 아이쿱 대구참누리생협이 각각 영역을 나누고 조합원을 받고 있다. “주부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멀리 이동할 수도 없잖아요. 딱, 마을, 동네 위주로 조합원들을 이어주고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할 수 있게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그렇게 그는 딸아이를 들쳐업고 마을모임에 나갔다. 처음 나간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너무 이야기가 잘 통했다. 서로의 관심사가 비슷하다 보니 대화가 쉽게 이어졌다. “학원 이야기 안하고, 관심 있는 아토피 이야기하고, 식품안전 이야기하고… 그렇게 시작이 된거죠” 무슨 일이든 한번 하면 열성을 보이는 성격 탓에 모임에 나가면서부터 물품위원장 직책을 맡게 되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생협에 작물을 제공하는 생산자들을 찾아가 만나고 생산과정을 살펴보는 일이 물품위원장의 임무였다.

당시 달서행복생협은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창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위원회를 꾸려나가는 과정에서도 그의 열성적인 성격은 빛을 발했다. 조합비 중 일부로 충당되는 준비위원회 운영비 중 얼마를 어떤 단체에 후원하는 일에 그가 의문을 제기했다. 준비위원장은 이미 전 회의에서 결정이 된 거라며 그대로 추진하려 했다. “언제 결정된 거냐고 물으니까. 다른 분들이 대답을 안해요. 확실히 정해진 게 아니라면 다시 의논을 해서 왜 후원을 해야 하고, 얼마나 할 건지 등을 정하자고 했죠”

2006년, 준비위원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위원장직을 그만두면서 그가 준비위원장을 직을 맡게 된 것도 그때의 일이 영향을 미쳤다. 집안일만 하는 주부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주장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때문에 적극성을 가진 그가 준비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음해 4월 창립총회를 열고 달서행복생협은 공식적으로 창립을 하게 됐다. 지금처럼 대구행복생협으로 법인을 설립하게 된 것은 지난해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따르면 조합원 300명, 출자금 3,000만원이 넘으면 법인으로 설립할 수 있다. 그는 지난해 법인을 설립한 이후부터 공식적인 이사장으로 소임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를 접수하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지 않을까”
“조합, 생협의 생명은 조합원의 자발적 참여와 주인의식”

요즘 그가 하는 고민은 어떻게 하면 좋은 질을 담보하면서 생협의 물품을 좀 더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친환경 농산물 뿐만 아니라 제조식품, 생활용품, 주방용품, 옷 등 생협이 취급할 수 있는 물품들을 더 확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리되면 단순히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수준을 넘어서서 노동자협동조합까지도 가능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같은 운동 단체에서 운동만 할 게 아니라, 이런 공부도 하면서 제3의 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더군다나 노동조합 운동을 하시는 분들은 본인들이 하나씩 기술을 가지고 있잖아요. 경영자가 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는거죠. 회사를 접수하는 것도 좋지만, 회사를 만드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는 고민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3월 아이쿱 생협은 구례에 라면 공장을 지어서 직접 친환경, 유기농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다른 라면 업체의 공장 설비를 빌려서 생산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직접 라면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반 라면에 들어가는 것보다 화학첨가물 10여가지 이상 정도 줄인 걸로 알고 있어요. 재료도 우리밀이고… 이렇게 조금씩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물품을 늘려가야겠지요”

제조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협의 모태가 농업, 농촌에 있다는 것을 잊진 않았다. 최근 생협에서는 수매선수금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 해 동안 먹을 쌀이나 채소류에 대해서 미리 대금을 지급해서, 생산자들이 고리대의 빚을 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건강한 생산자가 건강한 생산물을 생산할 수 있을 테니까요” 현재까지 아이쿱 생협 조합원의 10%가 수매선수금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생산자들과의 도농교류는 지금도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다. 대구경북에는 전남 다음으로 친환경 농산물 생산자와, 아이쿱 생산자가 많다. 모내기, 벼 베기 때가 되면 도시의 소비자들이 농촌의 생산자들에게 가서 함께 모내기도 하고 벼 베기도 하는 시간을 보낸다. 이런 교류 활동은 그대로 조합원들에게 산교육이 된다. 교류를 다녀온 조합원들은 다녀온 생산지의 생산품을 다시 찾곤 한다. 상주에 다녀오면 상주쌀을 한 번 더 먹고, 의성에 다녀오면 의성 사과를 한 번 더 먹는 식이다.

결국 생협의 모든 활동의 근간은 조합원과 생산자들의 자발적 참여와 주인의식에서 비롯된다고 그는 생각한다. “결국 생협이나 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주인이어야 하는거죠. 실질적인 주인. 모든 결정과 선택을 일부 간부들이 하고 일년에 한번 모여서 결정된 사항을 통보받고, 통과시키는 것이 주인은 아니잖아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 마을모임도 열고 해서 직접 결정내리고, 선택하도록 해야죠.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협동조합에도 필요해요”

이상원, 천용길 기자 solee412@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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